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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감촉의 노출콘크리트 큐브 안에 봄 햇살을 연상시키는 공간이 담긴 집을 만났다. 마당이 있어 주택의 삶을 누릴 수 있고, 이국적인 2층 서가가 매력적인 제노비아 씨의 집에 놀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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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어르신들에게 ‘짓다 만 집’이라고 불리는 집이 있다. 아무런 장식 없는 얼음 큐브 같은 네모난 노출콘크리트의 집. 추운 겨울에 손끝이 시릴 정도로 차가워 보이는 노출콘크리트 집이지만 안쪽으로 쭉 뻗은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따뜻한 감성이 묻어나는 ㄷ자 구조의 천장고가 높은 집이 나온다. 빨리 돈 벌어서 마저 집을 지으라는 어르신들의 말에 허허 웃으며 반응하는 사람 좋은 부부와 딸 선이가 그 집에 살고 있다. 한의원을 운영하는 최광순·제노비아 부부와 열 살 난 딸이 그 집에 둥지를 튼 지는 1년이 좀 안 됐다. 한약을 옛날처럼 약탕기에 직접 다리는 방식을 고집하고 있어 한약재를 다듬고 말릴 수 있는 마당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마침 집을 옮기게 되어 큰 마음먹고 마당 있는 집을 지어보자 했다. 예전 한의원을 설계해준 정현아 소장과 인연이 되어 터를 함께 보러 다니고, 그녀의 감각을 빌려 은은한 세련미가 감도는 집을 완성했다. 다세대 주택과 아파트가 솟아 있는 동네에 터를 잡고 너무 평범하지도, 주변과 너무 도드라지지도 않도록 이질적인 소재에 멋을 부리지 않은 투박하고 ‘못생긴 집’을 지었다. 1층은 한의원, 2층은 온전히 살림집으로 공간을 나눴는데 겉과 안이 전혀 다른 구조가 재미있다. 주택 자체가 빈틈없는 큐브처럼 보이지만 2층에 오르면 하늘이 보이는 작은 마당이 있고 생각보다 개방적인 구조임을 알 수 있다. 시행지침상 경사지붕을 얹었는데 안쪽으로 모이도록 해 밖에서는 전혀 눈치 챌 수 없다. 2층 살림집의 분위기는 따뜻하고 밝다. 화이트 베이스에 천장고가 높고, 창에서 비치는 햇살이 드리워져 봄날 같은 느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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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은 한옥에서 본뜬 ㄷ자 구조를 하고 있다. 현관에 들어서면 주방과 거실이 한데 어우러진 공간과 욕실, 선이의 방, 부부의 방으로 갈 수 있는 좁다란 복도 두 공간으로 나뉜다. ㄷ자 구조에 충실하기 위해 중정을 두고 그 둘레로 복도와 공간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것. 메인 공간은 주방과 거실이 함께 있는 곳이다. 경사지붕으로 인해 생긴 높은 천장을 나눠 복층으로 설계, 그곳에 서가를 만들었다. 거실 옆 한실의 붙박이장을 가장한 문을 열면 서가로 올라갈 수 있는 좁은 계단이 나온다. 외국에서나 볼 수 있는 이국적인 구조가 참 매력적인데 위에서 내려다보면 주방과 거실이 시원스럽게 한눈에 들어온다. 서가에는 책장이 나열되어 있고 끝부분에 자투리 짐들을 보관할 수 있는 구석진 공간이 있는데 딸 선이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만의 아지트다. 거실 형태가 좀 남다르다. 소파와 텔레비전 대신 다이닝 테이블만 덩그러니 놓인, 거실과 주방이 통합된 구조다. 좁다란 복도를 따라가다 중간에 욕실을 지나 코너를 돌면 선이 방이 나온다. 군더더기 없이 침대와 피아노만 놓인, 아이보리 색감이 예쁜 방이다. 복도 끝에는 부부의 방이 있다. 언뜻 보면 미니 거실인가 싶을 정도로 가구가 없다. 작은 소파와 책장, 붙박이장과 푸른 식물이 전부다. 이 집으로 이사하면서 침대 생활을 청산하고 바닥에 요를 깔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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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생활이 몸에 밴 주부가 주택에 살려면 처음엔 여간 복잡하고 불편한 게 아니다. 정현아 소장은 이 집으로 이사할 때 대부분의 가구들을 버리고 오라고 했다. 마당으로 공간을 내 실 공간이 줄어든 것도 이유다. 물건에 애착이 강한 제노비아 씨에게는 정말 큰일이었지만 집을 지으면서 삶의 변화가 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과감히 ‘버리기’를 감행하고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이사를 했다. 침대도 버리고, 텔레비전, 소파도 버렸다. 아침저녁으로 이불을 폈다 갰다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늘었고, 이불과 베개의 크기가 작아졌다. 소파에 늘어져 텔레비전을 보는 가족들의 모습도 볼 수 없게 됐다. 올겨울 추위가 불어닥쳤을 때 동파를 신경 못 써 수도가 얼기도 했다. 아파트와는 달리 바로 땅을 디딜 수 있는 마당이 있어 좋고, 덕분에 날씨의 변화에 민감해졌다. 조금 더 간소해진 생활, 소박한 생활이 몸에 익자 이제는 집이 조금 더 작아도 되겠다 싶다. 신경 써야 할 것들, 손 가는 일들이 점점 많아지지만 그런 리듬이 왠지 마음에 든다. 마당이 생긴 뒤로 옛날 방식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부쩍 하게 된다. 한약재를 볕에 말리고, 김장을 담그고,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조개도 구워 먹고…. 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의원 개업 파티를 했다. 아니, 동네잔치를 열었다. 수십 명의 손님이 북적대는 가운데 풍물놀이패가 흥을 돋우었다. 제대로 된 테이블, 의자, 그릇이 없어도 막걸리, 떡 등 다들 맛있게 먹고, 즐겁게 놀다 가는 분위기여서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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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는 하우스 콘서트도 열었다. 예전 집에서도 1년에 한 번은 가족, 친구, 동네 사람들을 모셔놓고 국악을 하는 친구들과 함께 하우스 콘서트를 열었다. 이 집으로 이사해서는 딱 한 번 열었는데, 가야금, 거문고, 장고 등 국악 연주가 새롭게 다가왔다. 앞으로도 종종 하우스 콘서트를 열 계획이다. 텔레비전이 없으니 참 심심하다. 예전에는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더니, 연말 연초에 텔레비전이 없으니 참 허전했다. 그런데 심심해지는 삶을 즐기려니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그래서일까? 또 얼마 전에는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모여 바느질 모임도 만들었다. 이 집의 안주인 제노비아 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참 아기자기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겉과 안이 상반된 모습을 지닌 집에서 안주인은 집 안 내부의 밝은 모습을 닮았다. 꽃을 좋아해 동네 꽃집 주인과 친구가 되고, 집에 찾아온 손님에게 내는 음식에 꽃을 곁들이는 감각 있는 여자다. “우리 집은 어느 곳에 있어도 가족과 시선을 마주할 수 있어서 좋아요. 의도하지 않아도 소통한다는 느낌이죠. ㄷ자 구조를 빙글빙글 돌면서 얻는 소소한 즐거움이 참 마음에 들어요. 날 따뜻해지고 마당에 꽃이 피는 봄이 오면 또 놀러오세요. 또 다른 느낌으로 맞이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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