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로운 항구, 싱가폴! 200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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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프레스 웹사이트에서 발췌한 자료입니다. 제174호 |
2. 래플스, 싱가폴에 도착 200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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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발전의 시작, 도시계획
2003-11-10
래플스가 싱가폴을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그에게는 아직 Bencoolen이 필요했기 때문에 싱가폴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다. 그는 윌리엄 파커 대령을 싱가폴에 이주시켜 그가 싱가폴을 관리하도록 했다. 두 번째 정착민인 죤 크로퍼드에게 래플스는 법을 만들고 무역과 도시에 관한 계획을 조심스럽게 구상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1824년에 체결된 앵글로-더치 조약에 의해 영국은 Bencoolen을 네덜란드에게 주고 말라카를 확보하게 되었다. 1825년 이후로 영국의 세 무역항구 말라카, 싱가폴, 페낭은 Straits Settlements로 불렸다. 이 무역항들은 총독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관리했는데 그는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동인도회사에서 싱가폴로 파견한 사람이었다. 1858년 이 회사가 문을 닫았을 때 총독은 'India Office'라는 보고서를 작성해서 런던에 보고했다. 그러나 불행스럽게 도 이 India Office는 싱가폴의 상업적인 가치에만 집중한 것이라서 싱가폴을 개발하거나 해적을 물리치는 것 들에 대한 문제에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한편 말레이반도에서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었는데 싱가폴에 있는 상인들은 그것이 그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싱가폴에 있는 사무실을 런던에 있는 식민사무소로 이전하기를 바랬는데 결국은 1867년에 그렇게 되었다 정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윌리엄 파커 대령은 야신이라는 상인을 감옥에 넣은 일이 있었다. 이유는 야신이 물건을 사고도 그 상인에게 대금을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투옥된 야신은 무척 화가 났고 복수를 계획했다. 어느 날 밤, 그는 빚을 갚기 위해서 한 상인의 집을 방문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자 그 집으로 갔다 그러나 그 상인은 야신이 자기를 죽이려는 줄을 알고서 파커에게 도움을 청했다. 파커는 몽둥이를 가지고 그 상인의 집으로 달려갔고 파커를 칼로 찌르고 도망가려 하던 야신은 파커의 아들과 그의 인도인 군사들에 의해 체포되었다. 죤 크로퍼드는 1823년에 싱가폴에 이주했는데, 1년 후에 그는 술탄 후세인과 추장 압둘라만과 함께 조약을 맺었다. 그 조약은 동인도회사에 싱가폴 전체에 대한 통치권을 주는 것이었다. 크로퍼드는 조그만 재판소를 설치해 재판을 시작했고, 나무로 된 다리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Elgin Bridge이다. 그는 1826년에 싱가폴을 떠났다. 1862년에 그는 런던에 있는 식민사무소가 싱가폴에 대한 무역과 법률에 관한 통치권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편지를 영국 국회로 보냈다. 1822년, 래플스는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싱가폴에 왔다. 그는 싱가폴이 그가 기대했던 대로 발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도시계획을 다시 시작할 것을 결심했고, 도시와 도로에 대한 세부적인 계획들을 세워나갔다. 집과 창고에 대한 측정까지 한 다음에 그는 Esplande라는 넓은 광장에 공공건물을 세우우기로 계획했다. 그는 상인들에게 그들의 창고를 강의 서쪽 강둑(선창지역)에 지으라고 지시했고, 창고 뒤편에는 중국인들이 창고를 지을 수 있게 했다. 영국인들은 Beach Road에 집을 짓도록 했고, 아랍과 말레이인, 인도인들에게도 그들의 지역을 지시해 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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