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이곳이 겨울에 얼음축제를 하는 곳인 듯 합니다.
아직도 저렇게 얼음이 남아있네요.
여기서부터 참꽃군락지까지가 2.3km라고 하네요.
오르는 길도 이젠 비포장이고 본격적인 등산의 시작인네요.
어느 새 1km를 걸어왔네요.
평지에서의 1km와 산에서의 1km는 역시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제 200m정도밖에 남지가 않았습니다.
대견사지가 가까워질 수록 경사가 더 심해지네요.
저멀리 보이는 탑이 있는 곳이 정상인지 알았었습니다.
하지만 저기는 정상이 아니고 대견사지가 있었던 너른 평지였습니다.
저앞의 작은 언덕을 넘으면 대견사터가 나타날 것이다.
이곳이 예전에 대견사가 있었던 자리입니다.
▶신라 흥덕왕 때 창건
비슬산 정상 대견봉 남쪽에 자리한 대견사는 신라 흥덕왕 때 보당암으로 창건된 것으로 하늘에 닿은 듯 높은 산정에 반듯하게 놓인 절 자리다. 당나라
문종(文宗)이 절을 지을 곳을 찾고 있었는데, 하루는 낯을 씻으려고 떠놓은 대야의 물에 아주 아름다운 경관이 나타났다. 이곳이 절을 지을 곳이라 생각한
문종은 사신을 파견하여 찾게 하였다. 결국, 중국에서는 찾을 수 없게 되자 신라로 사람을 보내어 찾아낸 곳이 이 절터이다. 이 터가 대국에서 보였던
절터라 하여 절을 창건한 뒤 대견사라 하였다는 전설이 전한다.(출처 : 대견사중창불사추진위원회 팜프렛)
▶일연스님이 삼국유사를 쓰셨던 유래깊은 절
창건 이후의 역사는 거의 전래되지 않고 있지만, 보각국사 일연스님이 고려 고종 14년(1227년) 승과 선불장에 장원 급제해 초임 주지로 22년간 주석(駐
錫), 참선에 몰두하면서 삼국유사를 집필한 곳으로 알려진다. 1416년(태종 16) 2월 29일과 1423년(세종 5) 11월 29일 이 절에 있던 장륙관음석상(丈
六觀音石像)이 땀을 흘려 조정에까지 보고되었고, 종파는 교종(敎宗)에 속사였다고 한다.(출처 : 대견사중창불사추진위원회 팜프렛)
▶대마도의 기운을 누르는 절이라하여 일제강점기에 강제 폐사.
절의 폐사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화가 전래되고 있으며, 임진왜란 당시 전소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 뒤 1900년(광무 16년) 영친왕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이재인이 중창하였으며,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사찰령에 의거 동화사 현풍군 말사로 편제되었으나 1917년 조선총독부의 강제폐사 조치로 폐사
되었다. 대마도의 기세를 억누르는 절이라 하여 일제의 강압에 의해 폐사되긴 하였으나 절터는 남향으로 현풍평야가 멀리 조망되고, 뒤로는 거암이 병풍
처럼 둘러 쌓인 신령스런 명당으로 석굴과 우물, 석탑과 석축이 남아 있다.(출처 : 대견사중창불사추진위원회 팜프렛)
참꽃군락지입니다.
추웠던 날씨때문에 눈부시게 피지는 않았지만 힘들게 올라왔던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는 차고 넘치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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